이덕일 저/권태균 사진 | 옥당
김종서라는 조선 초기 인물을 위주로 그의 사상과 업적, 계유정난 등의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있다.
태종과 세종 그리고 문종과 단종에 이르기까지 4대 왕을 모신 김종서는 그의 성리학적 신념과 국가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고 삶을 마감한 지조있는 인물이었다.
태종이 마련한 기반위에 세종의 훌륭한 업적이 쌓이고 자연스럽게 문종과 단종으로 이어졌을 탄탄하고 안정적인 조선 발전의 맥을, 권력의 야욕으로 무참히 끊어버린 수양대군(세조).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하지만, 만일 김종서가 선비를 지향하는 철저한 성리학자가 아니었다면, 좀 더 과감하게 처신하며 계유정난의 틈을 주지 않았다면, 그가 단종을 끝까지 지켜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종서를 아끼는 까닭에 인물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오. 종서는 성격이 굳세고 기운이 날래어 일을 과감하게 하기 때문에 뒷날 정승이 되면 신중함을 잃어 일을 허물어뜨릴까 염려해 미리 그의 기운을 꺽고 경계하려는 것이지 결코 그를 관란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오."
그 뒤 황희가 정성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그 자리에 김종서를 추천했다고 <지소록>은 적고 있다.
수양은 활쏘기를 빙자해 무사들을 멀찌감치 후원 송정으로 데리고 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지금 간신 김종서 등이 정사와 권세를 희롱하면서 군사와 백성을 돌보지 않아 원망이 하늘에 닿았으며, 군상(단종)을 무시하고 간사하게 이용(안평대군)에게 몰래 붙어 장차 불궤한 짓을 도모하려 한다. 이때야말로 충신열사가 대의를 분발하여 죽기를 다할 날이다. 내가 이것드을 베어 없애서 종사를 편안히 하고자 하는데, 어떠한가?"
무사들에게는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공격하겠다는 수양의 말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단순한 활쏘기가 아니라 역모였던 것이다. 설혹 이기면 다행이지만 지면 온 집안이 끝장나고 만다. 더구나 명분도 없는 거사였다. 수십 명의 무사들은 곧 둘로 갈라졌다. ....... 반대하는 무사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마땅히 조정에 먼저 아뢰어야 합니다"
.....
수양과 한명회가 그토록 공을 들여 포섭했음에도 대다수의 무사들이 반대했다는 것은 누구도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역적으로 바라보지 않았음을 뜻한다. 오히려 역적은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대의' 운운하는 수양이라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 있었다. 이들은 그저 수양대군이 술과 고기를 주니 따라다닌 것이지 수양과 함께 역모에 가담할 생각은 없었다.
(...) 주상 전하(단종)께서 왕위를 이어받으신 이래 불행하게도 국가에 어지러운 일이 많았다. 이에 덕 없는 재가 선왕(문종)과는 한 어미니의 아우이고 또 자그마한 공로가 있어서 내가 아니면 이 어렵고 위태로운 상황을 진정시킬 길이 없다 하여 드디어 대위를 나에게 주시는 것을 굳게 사양하였으나 무위로 돌아가고, 또 종친과 대신들도 모두 종사의 대계로 보아 의리상 사양할 수 없다고 하는지라 억지로 여정을 좇아 근정전에서 즉위하고, 주상을 높여 상황으로 받들게 되었다.
- 조카(단종)에게 왕위를 빼았은 수양의 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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